1등 진로란 ‘부모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미국무부 교환학생 참가후기
나의 가장 값진 1년 (1)

[미국교환학생 유학생활 이야기]

나의 가장 값진 1년 (1)

 미국교환학생 컨설턴트 이은수

2014년도 9월 미국교환학생 채소영

중학생 때부터 나에게 있어서 영어는 많은 교과목들 중 하나가 아닌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존재였다장래희망은 무조건 영어 관련 직업이었고 영어 성적을 상위권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국제고등학교를 희망하고 있었기에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다하지만 나는 자신감보다는 자만심이 많은 학생이었다국제고등학교2차 면접당시 나는 읽지도 않은 책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굴욕적으로 떨어졌다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나도 우리 부모님도 모두 충격에 빠져있었다.

그 시기에 엄마가 우연히 신문에서 유학원 밝은미래교육에 대한 기사를 읽으셨고 나에게 유학을 권유하셨다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당시 고등학생이 되는 중요한 시점에서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또한 보수적인 아버지 덕에 16년을 살면서 다른 나라를 방문한 적도 없었고 여권도 없었다그럼에도 내가 유학을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한국에서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유학이 훨씬 더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확신은 아마 국제고 불합격에 대한 오기가 아니었나 싶다.

  

 

출국 전날까지 미국은 멀고 어색한 나라였다다음날 비행기에 탄 후에서야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고취침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담요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조용히 울었다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생각보다 많이 무거웠다장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Tulsa 공항에서는 호스트 엄마와 언니동생 그리고 독일 교환학생 루이사가 날 마중 나와 있었다.

첫날부터 신기했던 것은 집으로 가는 길을 호스트 언니가 운전을 했다는 것이다물론 나보다 2살 많았지만 한국나이로 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후에 언니가 오클라호마에서는 16세 이상부터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독일 교환학생 루이사는 나보다 일주일 정도 먼저 호스트를 만났는데 나와 같은 처지였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호스트 가족들보다 먼저 친해지게 되었다루이사는 하얀 피부에 파란색 눈을 가진 이상적인 서양인이었고 예쁜 외모로 학교에서 인기도 많았다나는 루이사 바로 옆 라커를 사용했는데 수업시간이 끝나면 루이사 라커 앞에 남자애들이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학기 초부터 루이사는 본의 아니게 내 기를 죽이고 있었다물론 내가 소극적이었던 탓도 있었다낯선 나라낯선 학교낯선 사람들 속에서 적응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내 자신을 루이사와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고점점 소심해지는 내가 한심했다.

 

내 성격을 돌아오게 만든 것은 스페인어 시간에 말 한마디도 나눈 적 없었던 Wade 라는 남자애였다그 남자애는 나에게 한국어를 말할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하다고 답했다그러자 그 아이는 옆자리 친구에게 마치 내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한국어만 말할 수 있다는 듯이 비꼬았다화가 났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때 주변 아이들이 남자애에게 "Don't be rude!"라고 소리쳤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우면서도 내가 소극적인 행동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사건 이후로 나는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발음이나 억양에 대해 걱정했던 나와 달리 친구들은 신기하고 귀엽다고 해주었다시도해보지 않고 겁부터 먹고 있었던 것은 내가 미국에서 했던 가장 큰 멍청한 짓이었다.

 

 

첫 학기 7교시는 스페인어를 선택했었는데 후에 배구부로 바꿨다사실 한국에서 배구를 해본 적이 전혀 없었지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Try out 할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했지만 최소한 방해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다배구부 친구들과 코치도 그런 나를 알아봐 주었던 건지 실수를 하더라도 “Nice try!” 라며 격려해주었고체력훈련 중에 힘겨워 할 때는 “Go, Soyoung!” 이라고 소리쳐 주었다.

그 덕에 나는 학기 말에는 Best Planker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평소 의지가 약했던 나에게 배구부는 스스로 내 한계까지 도전할 수 있게 만들었던 존재였고 그 도전을 통해 나조차 몰랐던 내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한국에 있었더라면 절대 얻을 수 없었을 허벅지 근육도 덤으로 얻었다.

 

호스트 엄마는 Daycare를 운영하셨는데 아침 6시에 집을 나가셔서 밤 8시가 되어서야 돌아오셨다아침 일찍부터 밴 안에 베이비 시트를 넣고 멀리 떨어져 사는 아기들은 직접 데리러 가시는 것 같았다정말 부지런하시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에 집에서 딸들과 마주칠 시간조차 없이 바쁘신 엄마가 안타깝기도 했다주말에는 피곤하신지 늦게까지 주무시고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으셨다그래서인지 사실 호스트 엄마와 대화할 시간도 별로 없었고 그건 곧 어색함으로 이어졌다.

 어느 때와 같이 조용한 저녁식사 중에 먼저 말을 건네신 건 엄마셨다엄마는 요즘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살이 빠진 것 같다며 한국 엄마가 보시면 밥 안 먹여주는 줄 아시겠다고 농담을 하셨다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웃으면서 학교가 끝나고 Daycare에서 아이들을 놀아주어도 괜찮을지 물어보았다엄마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그 이후에도 시간이 나면 종종 Daycare에 찾아가 엄마를 도와드리거나 아이들과 놀아주었다엄마는 가끔씩 나를 놀리시려고 걸음마도 하지 못 하는 아기를 품에 안겨주고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시며 웃으셨다.나중에는 내가 정말 그 아기의 엄마라도 되는 듯이 분유를 물려주고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