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진로란 ‘부모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미국무부 교환학생 참가후기
[이현승] Hello and Goodbye!
Hello and Goodbye!

L’Anse Area Schools (MI) 미국교환
이현승

2017년 7월 24일, 드디어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유학길에 올랐다. 호스트 가정을 만나게 될 Marquette Airport에 도착을 한 뒤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혹시 날 못알아보는 건 아닌가?’ 라는 호기심을 가지며 공항을 빠져나오니, 호스트 동생이 ‘WELCOME ZOE’ 라는 간판을 들고 있었고, 호스트 부모님은 그 옆에 서 계시며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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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떠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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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환영하는 호스트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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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부모님과 함께 야구장 :)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내 짐을 찾으러 갔다. 그 때 호스트 아빠가 하신 농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Zoe. DId you put Korean flag on your luggage? Then it will be really easy to find it.” 짐을 찾고나서 처음으로 간 곳은 주유소 편의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게토레이였다. 우리나라에는 많아봤자 2-3종류 밖에 못봤던 게토레이가 여기서는 못해도 15종류는 더 되었다. 정말 고르는 데 오랜시간이 걸렸다.

주유소에서 나온 후 우리는 집으로 출발했다. 집은 공항에서 1시간 반 떨어진 곳이었는데 늦은 밤이고 졸립기도 해서 차에 타자마자 잠에 들었다. 너무도 피곤했던 나는 공항에서 호스트 엄마께 받은 휴대폰으로 부모님께 간단한 안부만 보내고 바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옆에서 영어를 하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깨어났다. 한국에 있는 내 방이라고 생각하고 엄마를 부르며 일어났지만 눈을 떴을 때에는 다른 방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옆에는 내 호스트 동생의 침대가 있었고, 내 배 위에는 고양이가 누워있었다. 침대에서 벗어나 창문 밖을 보았을 땐 내 눈 앞엔 드넓은 초록초록한 새싹이 있는 들판과 나무가 무성한 숲, 울타리 안을  거닐고 있는 말과 당나귀, 그리고 닭들을 쫓고 있는 개들이 보였다.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그 마음은 바로 사그러들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호스트 엄마는 집 구조와 짐을 풀어야될 곳, 그리고 집 규칙 등 등을 알려주셨다. 짐을 간단하게 푼 후 늦은 점심을 먹고 난 다음 다음주부터 있는 배구 연습에 참여하기 위해 무릎보호대와 운동화를 사러 갔다. 마트로 가는 차 밖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도로 옆은 무성한 숲과 넓은 호수가 보이고, 앞은 뻥 뚫린 일자도로,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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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내가 다닐 학교 친구들을 만난 곳은 바로 배구연습이었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영어를 말해야한다는 부담감과 내가 무언가를 말했을 때 알아듣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전부 나를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친구들과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호스트 동생과 같은 9학년을 다니게 될 나에게 호스트 동생을 한명씩 나에게 친구들을 소개시켜줬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Hi. My name is Zoe. Nice to meet you.” 밖에 없었다. 그 말을 한 후에 친구들이 나에게 말을 걸면 난 정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나에게 먼저 다가와줬다. 그리고 호스트 동생의 친구들이기도 해서 호스트 집에도 자주 놀러오기도 하면서 더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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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학교를 갔을 때는 수업을 바로 시작한게 아니라 한 주 정도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서 다행히 수업을 따라 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곧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어디서 그런 오기가 생겼는지 미술 시간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한 시간을 허비하는 건 너무 아쉽다고 스페인어로 바꾸었다. 스페인어 1을 듣는 거였으면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나는 스페인어 1이 아닌 스페인어 2를 들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어 1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걸 들을려면 학교 시간표를 다 바꿔야해서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었던 나는 그냥 스페인어 2를 듣기로 했다.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멍청한 짓을 한 나에게 첫 성적표에서 아주 무모한 결정의 결과를 볼 수 있었다. C가 나왔다. 그 성적표를 받은 순간 나는 그 길 그대로 곧장 카운슬러 선생님께 달려갔다. 그리고 “Ms.Grantz(카운슬러 선생님), I think I did wrong decision. Look at my Spanish grade. It’s horrible. Can I really change my class to Art again? Please?”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건 “No, you can’t. Sorry.”였다. 이미 시간표를 바꿀 수 있는 기간을 넘어버려서 더 이상 못 바꾸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 주 내내 성적으로 인해 우울해있었다.

스페인어 시간마다 우울해져 있는 날 본 스페인어 선생님과 친구들은 조금씩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도움을 얻은 나는 조금씩 다시 스페인 수업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수업시간에 손을 들어 발표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스페인어 퀴즈나 시험이 있을 때마다 다른 과목보다 몇 배 더 공부하고 모르는 게 있거나 궁금한 거, 이해가 안되는 건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께 바로바로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성적도 점점 올라가고 선생님과도 친분을 쌓아 학교 생활은 점점 재밌어졌고, 지금은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아도되고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있는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또 스페인어 성적이 올라가니 다른 과목들에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고 전체 성적은 평균 이상으로 올라갔고, 3월달엔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이달의 학생으로 뽑혀 학교 게시판에 내 얼굴이 올라가 있었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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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항상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들

성적이 오르면서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특히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중 가장 좋은 건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나 하고 싶은 스포츠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여러가지 이유로 하던 운동을 그만두거나 아님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 키 때문에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배구도 해보고, 배울 수 있을 곳을 찾지 못해 그만둔 농구, 중학교 들어오면서 그만둔 육상도 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시즌은 배구시즌 이었다. 원래는 학교 스포츠의 꽃, football, 미식축구를 할 생각이었지만 여자 중에서는 아무도 미식축구를 안하고 장비를 사는 데에도 돈이 많이 들어서 하진 못했지만 그대신 항상 경기를 보러갔다. 그래서 미식축구를 하겠다는 의지를 배구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여기 와서 처음 배우다보니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공까지 쳐야된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기가 생겨서 ‘시즌 끝나기 전에 경기에서 스파이크 한번은 쳐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연습을 하루도 빠짐없이 가고, 연습이 끝난 후엔 유튜브로 배구 자세, 경기들을 찾아보면서 몸과 눈에 익혔다. 키가 작아 친구들이 스파이크를 하기엔 어려울거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연습했다. 내 키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친구들 보다 2배 정도 더 높게 뛰고, 모든 공을 치기 위해 남들보다 2배 더 빨리 뛰었다. 그리고 한달후, 난 스파이크를 칠수 있게 되고, 거의 모든 공을 받아냈다. 시즌이 끝난 뒤에서는 가장 향상된 선수로서 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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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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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날리기 직전!!

여기와서 친구들도 사귀고, 새로운 가족도 만나고. 이제 헤어져야된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벌써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외국에 나와 공부를 정말 뜻깊은 일이고 특히나 1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여기 1년 동안 있게 많은 도움과 지지를 해주신 우리 아빠 우리 엄마, 아메리칸 가족, 친구들, 밝은미래교육 선생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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