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진로란 ‘부모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미국무부 교환학생 참가후기
[김시은] 사랑이란 단어를 가르쳐준 내 호스트 가족
사랑이란 단어를 가르쳐준 내 호스트 가족

Conestoga Christian School (PA) 기독사립
Hardin High School (MT) 미국교환
김시은

1. 미국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다!

처음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빠의 권유였습니다. 아빠가 물어보셨을 때 깊은 생각 없이, 뭐 괜찮을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빠가 본격적으로 알아보시고 수업에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얼떨떨했지만 계속 권유를 하셨고, 그때부터는 부담감과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중학교 3학년 말이라 고등학교 입시준비로 한참 바빴었고, 스트레스와 피로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런 기분을 아빠가 몰라주시는 것 같고, 너무 가기도 싫어서 정말 울고불고 투정을 많이 부리다가 한 번만 가보자고 설득하셔서 밝은미래교육에 가게 되었습니다.

밝은미래교육에서 다른 학생들과 자기소개를 하고 몇 가지 수업을 들었습니다. 가기 전에는 너무나 막막한 기분으로 밝은미래교육에 들어섰지만 막상수업을 듣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홀가분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수업을 다시 올 생각을 하니 기분도 좋았습니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밝을미래교육에 다니면서 선생님,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고, 2018년 1월 학기에 출국을 하는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출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그 다음 주 수업에 나오지 못한 친구들이 이미 출국을 해서 그렇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는 조금 두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018년 7월에 출국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한 뒤, 약 반 년동안 공부해서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여러 가지 세미나에 참석했고, 떨리고 걱정되었던 비자인터뷰도 통과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국 몇 일 전에는 잠실에서 대학컨퍼런스에 참석하여 선배들의 경험담과 조언을 들었습니다.

출국 날, 수하물을 붙이고 가족들과 함께 공항 내 카페에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국시간이 다가와 출국장 게이트 앞에서 밝은미래교육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다들 긴장된 얼굴로 친구들과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고, 공항에서 가족들에게 큰 절을 했습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엄마를 껴안는데 갑자기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울면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고 출국장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행기에 타니 너무 설렜고 맛있는 기내식을 먹고 시애틀에 도착했습니다. 입국심사, 짐 찾기 등이 끝난 뒤에 4H 매니저님을 만났고, 함께 시애틀 대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State 4H 재단에서 2일 동안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는데 한국인 약 10명과 일본인 20명 정도가 함께 했습니다.


2. 두렵고 설렜던 첫 만남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비행기를 타고 호스트 가족이 사는 곳 근처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호스트 가족들은 제 이름과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포스터를 들고 계셨습니다. 막상 만나게 되니까 너무 떨렸고,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에 서둘러서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호스트 가족들은 저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제 가족은 엄마, 아빠, 여동생 2명, 남동생 1명이 있었고, 방학동안  단기 교환학생이었던 일본인 남학생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동생들은 모두 각자 다른 집에서 입양된 가족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엄청 충격적인 사실 이었지만, 아빠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이 말해주셨습니다. 문화충격이었지만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스트 집은 제 로망이었던 2층 집이었습니다. 집 내부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었고 4마리의 강아지들도 있었습니다. 마당에서는 다른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5마리, 닭, 오리, 칠면조도 키웠습니다. 살면서 애완동물이라고는 햄스터 밖에 키워보지 못한 저에게는 아주 큰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랑 동생들은 가끔 먹이를 주러 나가거나,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를 위해 칠면조 잡는 것을 도와드렸습니다. 처음엔 겁도 나고 무서웠지만 직접 해보니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학교를 가기 전까지 가족과 함께 4H 축제에 가고, 강에 가서 보트도 타고, 워터파크도 다니고 캠핑도 다니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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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말 바빴지만 행복했던 학교생활

그렇게 몇 주가 지나면서 동생들과 굉장히 친해졌습니다. 특히 저는 첫째 여동생과 방을 같이 써서 금방 친해졌습니다. 동생들과 모두 같은 학교에 갔지만, 첫째 동생만 freshman 으로 고등학교에 같이 갔습니다. 학교와 집이 꽤 멀었지만 엄마가 중학교 선생님이셔서 같이 차를 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학교에 가기 전에는 친구를 못 사귀면 어쩌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첫 날에 Freshman 학교소개 캠프에 따라가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습니다. 거기서 친해진 친구가 학교 곳곳을 소개시켜 주었고, 선생님들에게 저를 데리고 가서 소개해주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쁜 학교생활이었습니다. 계절마다 열리는 콘서트, 풋볼게임 National Anthem, 페스티벌, 뮤지컬, 미국 공영방송 녹화, 경로원 방문 등 정말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10월에는 Speeh & Drama, 치어리더 등 6개 동아리에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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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에는 Cover Band 라는 밴드 수업을 듣게 되어 모든 Music Trip에 가게 되었습니다. Cover Band는 스포츠 활동에 서포트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농구경기를 많이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농구경기에 가면 경기중에는 치어리딩을 했고, 타임아웃 시간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처음에 치어리딩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스턴팅을 하다보니 너무 재미있었고 다들 마음을 모아서 한다는 것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항상 스턴팅을 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고, 나만의 화려한 스턴팅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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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한국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도 아니었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의 유일한 재미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부분 이외에는 재미없고 질리는 생활이라고 생각했고, 삶에 대한 목표나 대학교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많은 음악 활동과 더불어 동아리 활동, 스포츠 활동을 계속 하다보니 너무 재미있었고, 특히 영어실력이 매우 빠르게 늘었습니다.

집에서 숙제를 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여쭤보았을 때는 호스트 부모님들이 선뜻 함께 해주셨고, 항상 저를 서포트 해 주셨습니다. 제가 수학문제 하나를 풀지 못해서 30분 정도를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호스트 아빠가 퇴근하고 오셔서 저랑 그 문제를 같이 풀어주셨습니다. 아빠는 휴대폰에 수학문제 질문 어플은 받아서 같이 풀어 주셨고 엄마는 아는 수학 선생님께 물어보시며 도와주셨습니다. 어느 날은 호스트 부모님께 수학문제를 물어보았고 아빠가 먼저 해결했는데, 그날 밤 엄마가 제 방에 와서는 자신에게만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ㅋㅋ. 정말 유쾌한 가족들과 함께여서 시간이 더욱 빨리 갔던 것 같습니다.


4.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더라

시간이 흘러, 곧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것 때문에 몇 번 울기도 했습니다. 끝나는 것이 너무 아쉬웠던 이유는 저에게 너무나도 선물같았던 1년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하루에 즐거운일이 단 하나도 없던 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숙제가 많아도 즐거웠습니다. 홈커밍 파티, 가족들과 함께 했던 즐거운 추수감사절, 사랑과 선물로 넘쳐났던 크리스마스, New Year's Day, 쿠키와 사탕을 교환했던 Valentine's Day, 댄스파티 Twirp, 절대로 잊을 수 없는 Prom. 정말 꿈만 같은 일들로 가득했던 1년이었습니다. 특히 호스트 가족들과 갔던 여행, 바비큐 파티, 생일파티는 너무나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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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때 나눠주려고 꾸몄던 달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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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케이크!!

한국에서는 공부, 학원으로 삶이 바쁘지만, 미국에서는 학원을 갈 필요도 없었고 스포츠 활동들도 6시면 끝나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 정말 많았습니다. 저녁도 같이먹고, 식사 당번은 돌아가면서 하고, 밥먹고 식탁에 둘러 앉아 보드게임도 하고, 추운겨울에는 거실에 난로를 켜놓고 영화를 보거나 퍼즐을 맞추고 재미있고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주말에는 늦잠을 자다가 쇼핑도 가고, 영화도 보고, 외식도 가끔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뵈러가고... 1년 동안 정말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학교 졸업식 다음 주에 제 생일이 있었고 엄마는 미국에서 생일파티를 꼭 해보고 가야한다며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시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작은 파티도 아니었고 생일 파티겸 이별 파티여서 제가 친하게 지냈던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파티였습니다. 그렇게 초대를 하게된 사람들은 50명이 넘었습니다. 오픈하우스 식으로 파티를 했고 뒷마당에서 게임도 하고 물놀이도 하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이렇게 크게 생일파티를 한 경험이 없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제가 다니는 학교 바로 옆에 사셨고, 그 학교에서 일을 하셔서 정말 자주 만났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저를 정말 손주처럼 여겨주시고 사랑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만날 때 마다 안아주시고, 애칭으로 불러주시고,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셨다가 선물로 사주시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친구, 가족들, 선생님들에게 모두 너무 많은 사랑은 받으면서 1년을 지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호스트 가족분들은 저에게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를 만나서 행운이다", "너가 우리의 첫 번째 1년 교환학생으로써 우리에게 너무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너가 너무 그리울 것 같다" 라고 하시며 저에게 애정표현을 많이 하셨습니다.

정말 알차고 즐거운 교환학생 추억을 남기고 온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고 많이 얻어왔습니다. 제 1년간의 교환학생은 제 인생에 가장 큰 결정이면서,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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