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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선배들의 홈스테이 이야기
[미국고등학교유학] 유학 선배들의 홈스테이 이야기
 
미국대학입학 컨설턴트 안주영
 


유학생들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큰 도전이 되는 경험 중 하나는 바로 홈스테이입니다. 유학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변화와 배움의 기회를 주는 홈스테이 가족과의 생활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과 고민거리들로 가득합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유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이 그들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들려주는 홈스테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면 어떨까요? 유학수기에서 발췌한 일부를 소개합니다. 
 
 
 
 


김수 /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대학 건축학과
 
호스트 엄마 라산드라는 흑인이고 호스트 아빠 마이클은 백인이었다. 그들의 아이들은 다섯 명이었으며 나의 룸메이트는 중국인 중학생이었다. 그야말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한 집에 공존하는 것이었다. 처음 나는 대학입시를 준비해야하는 입장이라 이러한 버라이어티한 가족과의 만남이 내심 탐탁치 않았다. 이제 막 기기 시작하는 아이부터 초등학생아이들이 정신없이 집안을 어지럽게 할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룸메이트 핼랜은 공주처럼 자란 자기 밖에 모르는 중학생 소녀였다. (중략)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그 날도 SAT와 TOEFL 그리고 내신관리까지 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모르게 2층의 내 방으로 올라온 제이린에게 차갑고 냉정하게 방에서 나가달라고 말하였다. 그 때 제이린은 호스트엄마 아빠에게 울면서 너무 서운하다고 말을 했던 것이다. 라산드라와 마이클은 가족회의를 열었다. “수, 네가 제이린에게 말한 것에 대해 제이린이 상처를 받은 것 같구나. 어떻게 하면 좋겠니?” 호스트는 제이린이 울면서 말한 내용을 설명하고 나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별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제이린을 쳐다보니 정말 그들의 입장에서 느낀 서운함을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제이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제이린의 방에 들어가 나의 상황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랬음을 이해시키고 그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 일을 겪으며 맨 처음엔 내가 외국인이어서 그런가 하는 못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라산드라와 마이클의 진짜 가족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그 집에 들어가서 나는 예의는 바랐지만 조금 딱딱했고 경계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작은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가족문화를 경험하며 그들과 정말 한 가족이 되었다. 그 후 아이들은 나를 정말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크리스토퍼를 안고 한바탕 놀아주며 춤도 추고 자동차놀이도 하였다. 정말 그 아이들은 대학입시생으로서 나의 건조한 생활에 샘물 같은 귀한 선물이었다.
 
다양한 사람과 산다는 것은 나와 다른 점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점에서 힘든 도전이었다. 그러나 내가 사회생활을 할 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소통해야하는 것이 아니듯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수용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배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종교적 관점에서 호스트와 나와의 견해가 매우 달랐다. 라산드라와 마이클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였지만 성경과 하나님과의 개인적 소통을 믿지 않았고 세상문제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었다. 나의 모든 것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며 생활하는 나의 관점과는 너무도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종교관에 대해 내가 그들을 설득하는 대신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들 가족을 위해 기도하였다. (중략)


졸업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차를스톤 (Charleston)과 영화 ‘포레스트 검프’로 유명한 사바나 조지아(Savannah Georgia)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 마이클이 내가 건축학을 전공할거라는 것을 고려해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 두 도시를 간 것이다.정말로 아빠 같은 마음에 여행 내내 감사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저녁마다 해변을 거닐었다. 그 때 마이클이 한 말은 내 마음의 보석 상자에 잘 보관되어 있다. 헤어져도 가족은 늘 같이 있는 거야”라고 마이클은 나에게 멀리 떠나는 딸에게 말하듯이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외로울 수 있었던 나의 유학생활에 이런 따뜻한 가족을 선물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김민성 / 미네소타대학 경제학과
 
많은 홈스테이들은 대부분 똑같은 문제로 학생들에 대해 불평을 할 때가 많다. 그 학생들의 문제는 바로 온 종일 내내 방안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보통 컴퓨터를 같이 들고 온 교환학생들은 컴퓨터와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꼭 컴퓨터가 문제는 아니다. 어떤 학생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핑계로, 가족이랑 어색하다거나 또한 향수병에 걸려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통화하기에 바빠 방안에서 안나오는 경우도 있다. 방에 박혀있지 말자, 나와서 가족과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는 게 수월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족과 친해지게 된다. 만약 당신이 향수병에 걸려 방에 틀어박혀 전화만 하고 엉엉 울고만 있다면 유학생으로써 자격이 없다. 자신의 나라를 떠나 외국까지 공부하러 오는 당신이 향수병 따위 이겨낼 굳센 마음가짐도 없다면 그냥 다시 부모님한테 돌아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홈스테이 가족은 그 학생의 또 다른 가족이라고 보면 된다. 그 가족은 그 가족대로의 집안 규칙이 있을 것이고, 잘못된 행동을 하면 홈스테이 부모님들은 당신에게 부모님으로써 지적을 할 것이다. 그러면 학생은 아들, 딸로써 그것을 존중해주고 따라야 하는 게 올바른 것이다. 어떤 규칙들은 정말 지키기 힘들고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저항하고 반항하는 것보다 대화로 타협을 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이유빈 / 워싱턴대학교 경영학과
 
호스트 아빠는 일 때문에 출장을 많이 다니셨고 호스트 애들과 나, 그리고 학교 선생님인 호스트 엄마는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지쳐서 아무것도 못하기 일쑤였다. 집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키우는 개에게 관심도 못 가져줬다. 나중엔 호스트 아빠가 일 때문에 두 달간 다른 도시에서 지내게 되었고,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기에 호스트 가족 간의 말다툼이 잦아졌다. 그로 인해 나까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작년에는 없던 향수병까지 걸리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호스트 가족들끼리 갈등이 잦아진 건데 내가 뭔 상관이냐 할 수도 있는데, 그게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호스트 가족들끼리 말다툼하고 소리 지르고 울고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내 방에 틀어박혀 혼자 있기 일쑤였다. 학교 생활도 그렇고 호스트가족 문제도 그렇고 육체적은 물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고 내가 누구 좋으라고 여기까지 와서 혼자 이러고 있는지 모든 게 삐딱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호스트가족이 아무리 잘 챙겨줘도 너무 외로웠고, 교회도 가기 싫었고, 그냥 나 혼자 있고 싶었다. 그나마 나랑 정말 친한 미국인 친구가 항상 내 옆에 있어줘서 그 친구한테 의지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 사이도 다시 좋아졌고, 학교 생활에도 적응이 되어 당장 다 때려 치우고 한국에 가고 싶어하던 맘도 수그러들었다. 호스트 아빠가 두 달 동안 출장을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에 생각해보니 그 시간이 오히려 서로를 그리워하게 하고 서로의 빈자리는 느끼게 해서 가족들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준 기회였던 것 같다.
(중략)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영어 하나 믿고 까불던 내가, 엄마 아빠랑 맨날 말다툼 하고 엄마한테 짜증만 내고 그랬던 내가, 언니한테도 까불고 맨날 싸우던 내가 그 동안 미국에서 혼자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 같다.호스트 애들이 부모님이랑 말다툼 하는 모습이나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철없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정말 철없이 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호스트 둘째 아이가 뭔가 자기 뜻대로 안될 때마다 무작정 짜증을 부리고, 언성도 높이고, 엄마 아빠랑 말다툼하고, 잔소리 듣기 싫어서 대화 도중에 그냥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갈 때마다 뭔가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상한 마음이 든다. 나도 그랬으니까. 정말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는 것까지 나랑 똑같다.그럴 때마다 ‘쟤는 좀 더 커 봐야 알지.. 철 들면 지금 하는 것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인지, 나중에 얼마나 후회할지 알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철이 들었다.


 


 
 


이루다 / 한동대 국제법학부
 
홈스테이 가족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을 경우도 있다. 바로 그건 내가 직접 경험했고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없어서 여러모로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여건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절약하면서 검소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배울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아이들 둘 다 불안한 정신 상태라서 가끔씩 나를 뒷목 잡게 만든 적도 있었고 약간의 갈등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너무나 힘든 시기를 겪어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으로 이해를 했고, 변호사가 꿈인 내가 훗날 맡게 될 수도 있는 이혼 소송에서 의뢰인들의 자녀 입장도 많이 고려하게 될 것 같다. 모든 일상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물론 나에게 달지 않고 쓴 상황에서는 당장은 화나고 속상하고 힘든 환경이 될 수도 있지만 이 때 한 박자 멈춰서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거나 엄마나 친구 그리고 선생님들과 조금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나면 그래도 마음속에 담아두어서 생기는 트러블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 보게 되면서 이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보게 되기도 했다.
 
 
 
 
 




천세원 / 워싱턴대학교 경영학과
 

미국생활에서 나의 가장 큰 행운은 친절하신 부모님과 사랑스럽고 귀여운 2살, 4살 터울의 두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호스트를 만난 것이다. 이들은 나의 두 번째 가족이며 미국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중략) 가족들은 3년 동안 각자 나에게 큰 힘과 도움이 되어주었다. 아빠는 항상 무뚝뚝하지만, 내가 불이익을 당할 때가 있으면 제일 목소리를 높여주었으며,내가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때는 단호한 모습으로 나를 바로 잡아주셨다. 엄마는 해병출신이라 항상 나의 운동파트너가 되어주셨으며, 끊이지 않는 도전정신을 나에게 심어주셨다. 내가 주말마다 나무늘보처럼 놀고 있으면 항상 날 게으름뱅이라 놀리며 무언가를 하게 만드셨다. 누이동생들은 나를 즐겁게 해준 동시에 화도 많이 나게 했다. 아침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오래 걸리는 지, 아침이 되면 난 동생들을 깨우기 바빴고 빨리 가자고 고함을 질러야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3년 동안 학교에 제시간에 도착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지금도 동생들과 통화할 때면 그 추억을 떠올리며 같이 웃곤 한다. 여동생이 없었던 나에게 그들은 귀여운 여동생들이 되어주었으며, 집안에서도 남자로서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홈스테이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말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홈스테이도 없다는 것입니다. 큰 기쁨과 행복이 있는 만큼 많은 갈등과 아픔이 있는 것이 가족이며 대인관계입니다. 하지만 또 하나 공통적인 것은, 그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면 반드시 귀한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배들처럼 여러분도 꼭 소중한 교훈을 남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