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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9-12-10 오후 3:07:14 조회수 508
[노선영] 교환학생이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담대해진 나를 볼 수 있었다
교환학생이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담대해진 나를 볼 수 있었다

Hopkins High School (MI) 미국교환
노선영

2017년 7월 25일, 가장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이 드디어 왔다.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정 그리고 무엇보다 1년동안 다른 나라에서 낯을 많이 가리고 조용한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쉽게 발걸음을 때지 못했다.  짐싸는 내내 불평 불만을 쏟고 가는 마지막 날 까지 제대로 하는것 하나 없이 흐지부지 준비했다. 그리고 울고 계시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1년간 긴 여행에 발을 올렸다. 생각할 겨를 없이 시에틀에서의 날이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Detroit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나의 호스트 가족은 내가 가기 전, 한달동안 한국학생과 함께 살고 계셔서 미시간주 코디네이터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다. 여전히 부끄럼 많이 탔던 내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심어주시고, 친손녀처럼 교회에서도 마트에서도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나를 자랑하셨다. 덕분에 나도 자신감이 생기고 1년 동안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 함께 교회에서!

3주라는 시간이 지나 8월 말, 호스트 가족의 곁으로 가게 되었다. 남동생 한 명만 있었던 나에게는 여자 형제만 4명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나 확신했던것은 심심할 일은 없겠다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웃으시며 날 맞아주셨다. 도심과는 점점 멀어지며 밭이 보이고 Coffey Farm에 있는 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놀랄 정도로 많은 소였다. 냄새에 약한 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며칠 후 같은 학년인 올리비아가 같이 milking cow하러 가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내 몸집의 3배만한 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것 조차 내겐 너무 무서웠다. 결국 난 수건 빨래를 하기로 결심하고 올리비아가 일하는 동안 난 수건 빨래를 도맞아 했다. 아직 서먹한 사이 이기도 하고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냄새나는 소들과 6시간 동안 함께 했다. 그 시간은 우울했지만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만약에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milking cow

그 다음 주, 우리는 다같이 Show animal과 놀이기구가 있는 Allegan Fair 을 준비하기위해 큰 헛간에 소들을 옮겼다. 그리고 옆에는 갓 태어난 동물들을 돌보는 헛간이 있었는데 내가 속한 FFA 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토끼를 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동물들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 중 OREO 라는 이름을 가진 검정색 토끼가 있었는데 너무 귀여워서 계속 들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운 것도 있지만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소개시켜주고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때 점점 마음을 열고 쓰다듬는 모습이 너무 내 모습같았다. 무섭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면 앞으로도 걱정할 필요 없겠다고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소 옆에서 카드게임하기 ㅋㅋ

학교가 시작하기 전, 8월 말에 OHIO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사촌동생들과 함께 미시간과 사이가 좋지않은 OHIO v. 인디애나의 미식축구 경기를 보러갔다. 생에 첫 미식축구 경기의 스케일에 놀랐고 어느덧 게임과 한 몸이 되서 즐기고 있는 나를 보고 평소와는 다른 나의 모습에 어색했다. 하늘 위로 비행기 두 대가 지나가고 대학교 밴드부가 오하이오 문구를 만들며 신나는 노래를 연주했다. 공을 뺏길 때마다 모르는 사람과 아깝다며 이야기를 하고 같이  “OH, OHIO!” 라는 문구로 응원을 하며 서로 하나됨을 느꼈다. 결국 OHIO 가 이기고 폭죽이 터지며 다같이 소리 질렀다. 내가 한국인이어도 거부감 없이 말을 걸어주고 다른 인종이어도 하나되어 한 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것 자체가 너무 의미 깊었다.
 

 

어느 덧 9월 5일이 되어 학교 첫 날이 되었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됬다. 4년만에 처음있는 아시아인이어서 모두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자 친구들이 한국어 가르쳐달라고 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같은 수업이 들어있는 친구들은 내 옆에 와서 앉기도 했고, 모르는 것은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거의 매 주 한 유닛이 끝날 때마다 시험을 봤는데 가장 좋았던 점은 재시험을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학기는 미국 학생들도 C를 받는다는 수업이 좀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너무 긴장을 풀었더니 A는 커녕 C보다 낮지 않게 올리기도 바빴다. 학기 초라 동아리 활동도 넘쳐났고, 아무리 숙제를 제때 내어도 시험이 깎아먹기 일수었다. 2학기가 시작하면서 정말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모든 수업에 열심히 임하고 집에와서 그날 배운 수업을 복습했다. 그러고 나니 점수가 확연히 오르면서 A부터 B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처음 가는 날

학교에는 여러 가지 동아리가 있었는데 나는 올리비아가  참여하고있는 FFA 라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Future Farmer of America 라는 의미를 가진 FFA는 미국 전체적으로  가장 큰 모임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10 월 25~27 FFA national 에 다녀왔다. 인디애나 주에 가서 여러 주에서 온 FFA 학생들은 만날수 있었고 이 친구들의 꿈이 얼마나 확실한지 그리고 그 꿈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이번 교환학생을 통해 꿈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FFA 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개최하는데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고 의미있게 할수 있어서 더욱 좋은것 같다. 친구들과 크리스마스에 이웃들에게 크리스마스 박스를 전달하는 것 그리고 동물들을 씻기고 기르면서 작은 생명의 소중함도 깨달을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FFA National 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느덧 1학기가 마무리 되고 농구부를 모집한다는 말에 친구과 함께 지원했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농구를 할 때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팔다리 긴 미국인에게는 역부족인것 같았다. 내 실력은 고작 5학년 쌍둥이와 농구할 때 밖에 발휘되지 못했다. 결국 난 농구 Tryout 에 탈락했다. 하지만 Tryout이라도 여러 친구들이 격려해주고 구경 온 친구들이 할 수 있다고 소리쳐 주는 것을 보며 힘을 얻고 내 한계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너무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그 후에도 탈락했다고 놀리지 않고 오히려 학교 끝나고 같이 농구하러 가자는 등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질겨를없게 도와주었다.

10월 31일, 할로윈 코스튬을 입을 겸 한국도 알리자는 생각이 들어 한복을 입고 등교를 했다. 예쁘다고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지나갈 때마다 비웃던 애들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행복해서 부모님께 전화도 까먹을 때라 웃던말던 신경쓰지 않고 학교 후 친구들과의 Trick or Treat 에도 입고갔다. 가는 집집마다 예쁘다고 해주시고 많은 관심을 보이시는 분도 많으셨다. “I’m from Korea and this is our traditional dress”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다녔다. 하루종일 웃음이 떠나가지 않게 우리의 문화를 존중해 준 친구들과 이웃 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할로윈 데이~

10월에는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homecoming 이 있었다. 드레스를 고르고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자랑을 하던 중 친구들이 내가 전에 준 불닭볶음면을 먹어보겠다고 하였다. 경고했지만 입에 한가득 넣은 내 친구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맛있다고 계속 먹었다. 왠지 모르게 미안했지만 너무 웃겼다. 항상 밝은 내 친구 덕분에 나도 같이 밝아지는 느낌 이었다. homecoming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춤추는 것보다 노래를 즐기고 어눌하지만 따라 부르는것에 재미를 느꼈다.


홈커밍데이에서 친구들과 함께


불닭볶음면을 먹은 표정ㅋㅋㅋ

12월 5일 , 처음으로 재즈밴드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친구가 피아노를 잘 치는 나를 추천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5월 초에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 솔로 파트가 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이 백팩키드춤을 춰 주어서 나도 더 신나게 칠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렵지만 재미있었던 재즈밴드에서 모두 화합을 맞춰서 한곡을 완성해 내는것이 혼자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보다 훨신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가 밴드의 한 부분이서 더 좋았고 다 같이 모여야만 빛나는 재즈밴드처럼 나도 스스로 이기적이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가며 빛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OHIO주에서 블랙프라이데이 쇼핑을 다녀왔다. 정말 싼 가격에 가족들 선물 그리고 나를 위한 선물을 했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부모님들은 우리들 선물을 고르셨다. 그 다음주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르러 다녀왔다. 진짜 트리를 집안으로 들이고 쌍둥이 동생들과 함께 꾸몄다. 강아지에게도 크리스마스 코스튬을 입히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났다. 크리스마스 당일, 다같이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부모님과 놀러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깨웠다. 선물을 보니 얼마 같이 지내지 않았어도 나를 잘 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예쁘다고 했던것들 아니면 내가 관심가지고 있었던 큐브 등 여러가지를 선물로 주셨다. 할머니께서는 직접 바느질하신 이불을 선물로 주셨다. 사랑받는 기분이 들고 미국에 와서 이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던 내가 어느 누구보다 행복해 하고 있었다.  이때 미국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것 같다.


크리스마스 트리 고르기!


우리가 직접 꾸몄다!!

2017년의 마지막인만큼 교회캠프에 가서 새해를 보내기로 했다. 카자하스탄에서 온 교환학생을 만나 친해지고 같이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부모님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고 가족들이 보고싶었다. 미국에 와서 한번도 운적 없는 내가 연말이라는 이유 만으로 눈물을 흘렸다. 5개월 동안 잘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그 생각마저 무너지게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냥 괜찮아 질때 까지 울었다. 울고나니 웃음이 났다. 그 동안 행복이라는 이유로 남을 아프게했던 기억이 나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내가 되는 또 하나의 성장하는 나였다.

1월 16일, 여기서는 16살로 올라가는 것을 큰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가자마자 생일축하한다는 말을 해주는 친구들고 많았고 Snapchat이란 어플로 생일축하 해주는 친구들도 많았다. 집에오니 비빔밥을 준비해주셨고 불닭볶음면 3팩과 다른 과자들을 선물로 주셨다. 저녁에는 쌍둥이가 케잌을 만들어 주었다.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그 주 금요일에는 친구들과 볼링을 치러 갔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진심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고 즐거운 날은 만들어 준 가족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1월 29일, 한국에 관해 소개하는 PPT 를 만들어 초등학교 아이들 앞에서 발표했다.  유치원부터 5학년까지 총 6번에 걸쳐 똑같은 말을 했다. 처음에는 마냥 귀엽고 재미있었던 아이들이 6번에 걸쳐 같은 질문을 하니 지치기도 하고 내가 뭔 말을 하고있는지 싶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넣은 한국 사탕 체험이나 진미채 먹어보기, 세계지도에서 한국 찾아보기 등 여러 활동을 넣으니 지루하지도 않고 아이들도 흥미있게 들어줘서 그 누구보다 뿌듯했다. 특히 한복을 입고 발표를 했는데 지나갈때마다 “That’s the Korean girl! Hi Clara” 라고 인사해주고 나를 위해 만들었다고 작은 그림을 그려봤다고 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진로중에 선생님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몇번 하긴 했는데, 이번 기회에 내가 선생님이 되면 어떨지 생각을 해볼수 있는 기회였고 그 꿈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세삼 깨닫게 되었다.


구경하는 아이들과 나

2월에는 또 다른 댄스파티인 winter follies가 있었다. 친구의 초청으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댄스파티가 끝나고 나서도 집에서 노래를 틀고 춤을 췄다. 확실히 아는 노래도 많이 생기고 따라부를수 있는 노래도 많아서 내가 제일 신나게 논것 같았다. 지금까지 1년안에 이렇게 다 터 놓을수 있을만큼 친해진 적이 없는데 신기하게 고작 몇개월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편하고 친구가 아닌 가족같았다.




 
그 다음 주는 OHIO 주에 가서 날 보고 싶어하던 사촌동생들도 만나고 Amish country 에 다녀왔다. 이 동네는 아직까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태양열을 쓰거나 전기를 만들어서 스는 동네이다. 그리고 마차를 끌고 다니는게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유소도 없었고 동네 공기도 정말 좋았다. 치즈 공장에도 다녀왔는데 여러가지 치즈를 맛볼수 있어서 정말 신기했다. 피자맛 치즈 와사비맛 치즈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제일 내 맘에 들었던 것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치즈였다. 치즈를 직접 만드는 현장도 보고 그 치즈를 어떻게 보관하는지 그리고 그 치즈가 어떻게 사용이 되는지 알아보았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체험하며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OHIO 근처에 가면 이 동네는 꼭 가보라고 추천 해주고 싶다. 다녀오는 길에 여러가지 육포들을 구경했는데 악어, 치킨, 사슴, 등 여러가지 종류의 육포가 있었다. 내가 돌아가기 전에 사슴고기를 맛 볼수 있게 해주겠다는 동생들의 말이 무섭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4월 말, Coffey Family 였던 우리는 가족모임에 다녀왔다. 정말 놀랐던 건 가족이 다 모이지도 않았는데 강당 하나를 꽉채웠다. 덕분에 많은 친구들도 만났다. 옛날에 미국으로 입양되신 한국분을 만났는데, 그분도 그렇고 그분 아이들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셔서 오랫만에 옛날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한국인은 역시 한국인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말을 못하셔도 갈때 한국말로 인사 해줄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우셨다. 그 아이들도 다시 한 번 만나서 제대로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미국에서 생활하는동안 실수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그 누구보다 많이 격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것이 쉽지 않았는데 하고 나니 성장한 나와 담대해진 나를 보니 교환학생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방콕생활을 좋아하던 내가 활동적이게 변했다. 나 스스로 너무 신기하다. 앞으로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기싫은 마음이 들거나 뜸을 들이게 된다면 이렇게 가기 싫었던 저사람도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 이렇게 소심하던 사람도 변했고 성장했는데 나도 할수 있지 이런생각을 가지고 교환학생을 통해 변화를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작은 행복은 행복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나의 생각을 변화시켜주었다. 지금은 사소한것 하나하나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포기하려던 나를 끝까지 붙잡아 주신 밝은미래 선생님 한분한분께 정말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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