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국무부교환학생 체험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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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선배들의 생생한 유학스토리, 이젠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등록일 2019-12-10 오후 7:26:50 조회수 286
[이예은] 교환학생 경험은 소극적인 나를 변화시켰다
교환학생 경험은 소극적인 나를 변화시켰다

Damascus Christian School (OR) 기독사립
White Pine High School (NV) 미국교환
이예은

1. 교환학생을 결심하게 된 배경

저는 평범한 기독교 집안의 외동딸로 단란한 가정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는 것과 찬양 율동하는 것이 쑥스럽고 싫어졌으며, 엄마가 믿는 하나님이지 나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교회에 가는 것도 싫어서 반항을 했으나, 매주 억지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이런 나를 위해 부모님은 대한민국 중학교 의무교육을 포기하시고 돈이 많이 들고 기숙사 생활을 해야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해야겠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내셨습니다. 나는 예닮글로벌아카데미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며 학교에서 신앙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면서 독립심과 자기관리능력을 조금씩 키워갔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 중 목회자 자녀와 외국에서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의 자녀가 여러명 다녔습니다.  미국, 말레이시아, 또는 뉴질랜드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있었는데, 저와 친했던 친구가 9월 2학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또 한명은 말레이시아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한국에서만 있을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우연히 국민일보에서 미국무부 크리스천 교환학생 선발에 대한 광고를 보시고, 밝은미래교육을 알게 된 후, 바로 교환학생 준비를 시작했고, 미국에 가기 전에는 새로운 모험이 될 날들을 기대하고 설레었습니다.


네바다주 ELY 모습


2. 미국 도착 & 호스트 가족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교육을 받고, 나는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담대하게 처음 도착한 미국은 시애틀이었고 입국심사를 받은 후, 네바다주 라스베가스공항에서 호스트 어머니와 두 동생을 만났습니다. 처음 만난 미국사람들은 내 생각과는 굉장히 달랐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우선 말이 너무도 빨랐고 발음도 시험에서나 듣던 회화발음이 아니라서 그런지,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너무도 빨리 내 영어에 자신이 없어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호스트 동생이 사탕을 먹고 싶다고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사탕 먹을래? 라는 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어보지 못하고 그 날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벙어리가 되어 버렸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호스트 가정에 도착해서 내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중1때부터 기숙사에서 2명 또는 3명이 작은 방에서 살았는데 그 기숙사의 3배쯤 되는 방에 나 혼자 그것도 새벽에 나 혼자 남겨지니까, 갑자기 외로움과 말을 못하는, 벙어리같이 말도 못하는 나의 현실이 너무도 막막해서 ‘이 세상에 나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엄마 아빠 한테 잘 도착했다 연락도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말을 못하고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고, 핸드폰도 없어 연락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서 나는 혼자 계속 울면서, 그날 밤 바로 한국행 티켓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갈 수 도 없고 부모님께 얘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계속 울다가 기독교 학교에서 QT를 배워서 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선물로 사준 노트도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성경책을 꺼내 읽으면서 아침까지 QT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외롭고 힘이 들 때 나의 위로가 되어주셨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QT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녔던 교회

그 다음날 그래도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가족의 규칙이나 내가 알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못알아 들어서 다시 물어보는 게 꺼려졌습니다. 왜냐면 또 내 말을 못알아 들을까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3. 미국 공립학교에서의 생활

학교를 갔는데 수업은 밝은미래교육에서 매주 출국 전에 수업을 들었을 때 염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셔서 여기서 열심히 해라 여기서 한 것을 미국에서 그대로 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나는 토론식으로 이루어진 수업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었습니다.  나는 내성적이기도 했고 ‘여기서 안해도 미국에 가면 다 할 수 있을거야’ 하는 자만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가보니 선생님들은 두 배 이상 말이 빠르고 녹음을 해서 들으라고 오리엔테이션때 배웠는데 녹음은 했지만 소용이 없었구요, 나는 한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들어봐도 너무 빨라서 내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녹음을 해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것은 미국 아이들은 선생님보다 더 말이 빠르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우리나라 한국의 십대들처럼 줄임말이나 유행어, 비속어 등을 사용하는지, 제가 거의 모르는 말을 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달쯤 되니까 영어가 귀에 익숙하게 들렸고, 늘 긴장하고 있었던 것에서 편해져서, 마음이 좀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세달 쯤 되니까 영어가 내 귀에 익숙하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게 다 알아 듣는다는 의미는 아니고 익숙해졌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다른 국가 교환학생들과 만든 작품

White Pine High School 에서 내가 듣는 영어수업을 지도하는 Sturgeon 선생님을 만났는데, 학기 초에 힘든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무엇이든지 얘기해라 도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하셨고, 나는 초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선생님에게 아이들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질문했고 선생님은 자신의 아들이 12학년을 다니고 있었는데 만나게 해주고 선생님 반의 친구들도 소개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10학년 2학기로 시작했는데 12학년 졸업여행 디즈니랜드도 갈 수 있게 해주셨고, 11.12학년이 참여하는 「토너먼트 오브 킹스」 라는 라스베가스 디너쇼에도 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년동안 선생님은 생일도 챙겨주시고 집에 놀러가 선생님 가족들과 함께 놀기도 했습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 힘이 되어주신
너무도 자상하신 멘토선생님

그 썰전선생님은 나에게 정신적 멘토가 되었고 일리에서 호스트부모님보다 더 친하게 지냈고 마음을 모두 터놓고 지낼 수 있었으며, 선생님은 한국과 한국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으셔서 한국에서 고춧가루를 택배로 받아 선생님 집에 가서 김치를 담그기도 했습니다.


4. White Pine High School 공부 따라잡기

학교에 간 첫날에 친구들이 먼저 와서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과 함께 늘 점심식사를 같이했고 식사를 하면서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는 너무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친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언어와 학습을 따라가는 것에 벅차서 아이들과 많이 어울려 놀거나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레포트를 위해 만든 작품

내가 들었던 10학년 2학기 수업 중 미국사(역사)가 정말 어렵게 다가왔는데  한달정도 들었을 때 정말 힘이 들어서 담당선생님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나는 미국사가 정말 어려워서 수업을 못따라가겠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시면서 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다닌 White Pine High School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수업이 있는데 나는 매주 금요일에 학교에 가서 내가 그 주에 부족한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내가 만약 내야하는 과제를 못냈을 때 매주 금요일에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과제를 보충하기 위해 학교에 갔고 반년간 거의 매주 학교에 가서 열심히 노력을 했고 A‐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적표

 
그리고 나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화학을 배우고 싶었는데 마침 화학수업이 있어서 기쁘고 들떠 있었는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등교를 하면 40분정도 시간이 나는데 그 때 화학선생님 교실에 가서 모르는 부분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했고, 이 과목 역시 반년내내 선생님을 찾아가서 모르는 부분을 질문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 제가 너무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전혀 귀찮지 않다. 괜찮다고 하셨고, 나는 B(플러스)를 받았습니다. 다른 과목은 모두 A이상의 점수를 받았는데 가장 열심히 공부한 화학만 B(플러스)라서 정말 속상했습니다.




네바다주 Ely White pine high school 12학년들과 캘리포니아비치에서


5. 네바다주 일리(Ely)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기

내가 살았던 곳은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Ely라는 작은 시골이었는데 인구는 4천명 정도며 한국인은 한명도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호스트 가정은 사막에 있었고 마당은 완전 넓어서 농장수준이었으며, 다양한 동물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말 3마리, 양 1마리, 개 5마리, 고양이 1마리, 닭 5마리, 토끼 3마리, 돼지 여러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워낙 내가 동물을 좋아했지만 마당에 나가면 온통 지뢰밭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들은 마당과 집 안을 마구 돌아다녔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 5시45분에 기상해서 동생들이 일어나기 전에 씻고 아침 준비를 해서 먹고 7시에 학교에 등교해서 수업 전에 공부할 수 있었고,. 집에서 하는 일은 내 빨래와 내 방청소, 설거지를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내가 먹은 것만 씻으면 되었고 다른 가족들도 자신의 것들을 했기 때문에 별로 할 일은 없었습니다.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동생들의 시간을 내가 침해하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다른 가족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호스트 아빠인 에릭은 매운 음식을 잘먹고, 백인치고는 매운 음식과 김치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방학 때 외할머니로부터 김치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미국에 갔을 때 함께 김치를 만들었는데, 에릭은 그 김치를 지인들에게 조금씩 나눠 먹었고 김치 반응이 좋았다고 해서 매우 뿌듯했습니다. 호스트 엄마는 밝고 상냥한 분이었으며 내 생일에 케익을 직접 만들어 주시고 늘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 하셨고, 픽업도 늘 해주셨습니다.

나는 도착한 첫 주에 부모님께 “나는 크리스천이라 교회를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2군데 교회에 데리고 가 주셨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곳에 가라고 해서 내가 마음에 드는 교회를 갔고 매주 교회를 데려다 주셨다. 설교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은혜를 받아서 많이 울기도 하고, 치유도 체험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교회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호스트 가족들은 서류에는 종교가 기독교로 적혀 있었는데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다. 그래도 매 주일마다 차를 태워다 주시고 시간이 안될 때는 교회성도분이 데리러 오셨습니다.

호스트 아빠 에릭은 우리아빠와 비슷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기계와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것이였다. 한국에 있을때도 아빠가 나한테 그런것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잘 듣곤 했었는데 에릭도 저에게 기계나 자동차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고 나는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호응하면서 잘들어주었고 아빠와 3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적도 있었습니다. 호스트 동생들은 아빠 얘기를 잘 안들어주어서 그런지 저에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초반에 저는 가족들과 하는 대화를 잘 못 알아 듣는데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그래서 모르는데 다시 물어보기가 민망했습니다. 그래서 반년이 지나도 서먹한 부분이 있었는데, 2번째 학기 때 덴마크에서 온 교환학생 여자아이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미국인처럼 영어를 잘했고 그래서 말이 잘 통해서 그 아이가 중간에서 쉬운말로 통역을 해주기도 했고 성격이 워낙 외향적인 친구라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덴마크 친구 덕분에 나도 덩달아 활발해졌습니다.


가족여행


6. 교환학생으로부터 느낀 점

수업시간에 화학선생님이 발효에 대해 설명하면서 예시로 일본의 김치에 대해 얘기했는데 나는 그 김치가 일본 것이 아니라 한국음식이라고 정정해서 알려 주었고 선생님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외국에 나가서 한국문화에 대해 알려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일리에서 호스트 여동생이 4H라는 활동을 했는데 나와 덴마크 친구가 프리마켓을 물건을 팔면서 봉사활동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프리마켓에 온 손님들 중에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이라는 점에 대해 호의를 보여 주었고 천국의 계단 한국드라마를 봤다고 하시면서 반갑게 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호스트 가족들과 함께
 
나는 1년간의 교환학생을 마치면서 힘들고 외롭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여유로운 교육, 성적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하나하나 지식을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게 되어 나는 미국에서 좀 더 유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7. 기독교 사립 고등학교 유학생활

나는 미국에 있고 싶기도 하면서 너무 힘들고 외로웠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만만치 않은 유학비용도 부담이 되어 부모님께 유학보내달라는 말을 강하게 하지 못하고 그냥 미국 교육이 마음에 들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기도해보고 진로를 정하자고 하셨고, 기도 응답으로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사립 Damascus Christian School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다마스커스 호스트 가족들

일단은 새 호스트 가족들과 만나기 전에 이메일뿐만아니라 스카이프로 먼저 대화를 하고 만나서, 가족들을 공항에서 처음 만났지만 부담감 없이 편안한 가운데서 반갑게 가족들을 만났고, 그리고 호스트 어머니가 한국인 혼혈이라서 더 좋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신실한 종교인이지만 동방정교라는 종파의 기독교인이라서 우리가족은 우려하셨고 동방정교가 아닌 개신교회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사실대로 얘기를 했고 사실대로 얘기해줘서 고맙다고는 하셨으나 호스트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분들은 동방정교 교인이라는 것을 얘기해 달라고 했고 내가 개신교회를 간다고 한 것이 그들에게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먹한 기간도 있었지만 나는 그분들의 종교신념이나 가치관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이야기하지만 심각했었습니다.




내 생일을 위한 호스트 엄마의 상차림

비록 종교의 문제로 서로에게 상처는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가족들과의 친밀감은 좋았습니다. 두 남동생들은 귀엽고 대화도 많이 나누었고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다니며 추억을 쌓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1년 교환학생을 마친 후라서 미국생활에 잘 적응되어 어떻게 하면 가족들과 시간을 잘 보낼지 알 수 있었고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산책을 함께 나가고 여행을 하는 등의 활동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호스트맘의 부모님이 이사를 오셔서 한인교회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처음 한인교회에 간 날, 북한동족선교를 하시는 목사님께서 오셔서 북한선교에 대한 실제 상황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더욱이 최근에는 남북간의 상황이 많이 호전되면서 이슈가 되어서 더 가깝게 느껴지고 아픔도 느껴졌다. 또, 내가 목사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한 이후부터 내가 생각했던 곳은 국내, 해외 모두 생각해 봤었지만 살면서 단 한번도 북한선교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충격적이었다. 북한의 기독교에 대한 현실을 더 알고싶어서 자신의 신앙생활?역경?을 북한 성도가 직접 쓴 일기로 엮은 책을 사고, 내가 할 수 있는만큼, 우리가 통일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조금이나 도움이 되길바라며 선교후원비도 보냈습니다. 저는 호스트맘의 생일이 되어 생일상을 준비했는데 한국의 미역국과 한우불고기, 그리고 빵을 구워서 선물과 함께 차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일에는 호스트 맘의 어머님께서(한국인) 미역국에 너무도 먹고 싶었던 떡볶이와 한국 반찬들로 준비해 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정에서는 집안일을 돕기 원해서 매주 돌아가면서 설거지, 개 돌보기, 쓰레기 분리수거와 청소기 돌리는 일들을 나누어 했습니다.






Spring Break


8. 기독교 사립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방법

전에 있었던 일리가 워낙 작은 마을이고 공립이어서 인지 몰라도 그 학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학을 가지 않아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었는데 다마스커스는 사립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안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고, 복장 제한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공립보다 단정하고 규율이 더 강했으며, 아이들끼리는 매우 친밀했습니다.
 
학교수업은 일년 교환학생 경험 덕분에 조금 더 알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든 과목수업이 다 어려웠고, 전에 있던 학교는 공립이기도 하고 학구열이 별로 높지 않아서 과제물 내는 것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으나, 사립은 굉장히 엄격해서 처음에는 시간에 맞춰서 내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시간이 늦으면 점수를 반 깍는다고 했고, 사립학교의 시계는훨씬 더 엄격한 체계로 굴러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World History 프로젝트 수업으로 홍보동영상을 만들 때엔 팀원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나는 추가로 더 공부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언제나 오픈마인드로 모르는 게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말을 했고 그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세계문학 수업 때 세익스피어 책을 읽고 각색하여 무대에서 짧은 연극을 하는 프로젝트수업이었는데, 나는 보조도구와 소품을 만들었고, 대사 뽑는 것도 도와주었습니다. 대본리딩, 도구 만들기, 공연까지 우리팀은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하나된 팀워크로 연극을 마쳤고, 그리고 다들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나는 무대에 서거나 사람들 앞에 나가는 걸 안좋아했는데 우리팀을 위해 연극을 하고 세익스피어 소설책 한 장면의 등장인물이 되어 일부분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수업에서 부족한 부분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께 찾아가서 물어보고 숙제하는 시간을 늘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성적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체크하여 다음 기회에는 더 노력해서 시험과 과제를 조금 더 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겠네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1학년 2학기 때 전과목 all A이상을 받았고 수학과목에서는 정리를 잘한다고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귀여운 상을 받았고, 화학과목에서도 성적 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학과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상장



 
9.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의 말

나는 너희들이 호스트 가족을 처음 만났을 때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OT 때 말씀하시겠지만 처음에 너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너가 틀리는 것도 오히려 도와주시고 괜히 아는 척 해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게 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해라. 나는 처음에 머리가 하얘지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너희들은 미국에 간 것 자체가 큰 용기를 낸 거니까 혹시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두려워하지 말고 물어볼 수 있는 담대함을 길러라.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적응하고 공부하고 과제물 내고 하느라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부족했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다. 살아보니까 친구를 사귀는데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먼저 다가설 줄 아는 용기인 것 같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실한 마음이라 생각한다.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고 진정성있게 대하며 먼저 다가선다면, 힘들겠지만 너희들은 두 가지를 다 잘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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