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국무부교환학생 체험스토리

> 미국교환학생 > 미국국무부교환학생 체험스토리

교환학생 선배들의 생생한 유학스토리, 이젠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등록일 2019-12-11 오전 10:20:05 조회수 275
[정준영] 앞으로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합격대학
Illinois State U
Iowa State U
Virginia Commonwealth U

Salem Christian School (VA) 기독사립
정준영

1. 유학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초등학교 6 학년 때, 우리 형은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그 때는 어렸기에 그냥 나랑 자주 다투던 형이 다른 나라로 가서 너무 좋았었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도 우리 형이 부럽지 않았다.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엄마를 따라서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다. 새 환경이 낯설었지만 이 분위기는 어색하진 않았다. 전에 어학연수도 다니면서 외지에 대한 내성이 있었던 것 같다. 잘 적응해내고 공부도 꽤 해서 전교 26등, 상위 20퍼센트라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그 좋았던 길이 중학교 2학년, 3학년 학교를 고향으로 옮기면서부터 내리막이 되었다. 공부는 더 이상 하지 않았고, 항상 피시방, 농구만 하러 다녔다. 영어와 일본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 부모님에게 수치를 주었고 나에게는 매를 주었다. 항상 교과서를 배게 삼아, 선생님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잤다. 자연스럽게 등수는 전교 180등으로 떨어졌다. 거의 7~80 퍼센트. 만날 놀러만 다니고 미래는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도 정했어야 하는데 정하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7월, 여름방학이 가까웠을 때, 우리 엄마는 나에게 유학을 권하셨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솔직히 가보고 싶었다, 친구들이랑 해어지기는 싫었지만. 유학원에서 받은 유학생들이 쓴 수기를 보고 기대가 커졌다. 나도 외국 가족과 외국 친구, 외국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경험 해볼 수 있다니. 한 달 동안 밝은미래교육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준비를 했다. 나는 버지니아 주에 Salem Christian School이라는 학교에 가게 되었다. 솔직히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어학 연수를 여러 번 가봤으니까. 이러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미국에 있는 동안 돌봐주실 호스트 가족을 찾지 못했다. 호스트를 찾지 못한다면, 그 학교에 가지 못한다. 미국에 가지 못한다. 부모님도 기도를 해주셨고 나도 하나님께 기도를 했었다. 제발 미국에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말이다.

놀랍게도 며칠 후에 밝은미래교육에서 연락이 왔다. 호스트 가족을 찾았다고. 나중에 알게 됬지만 Wheeler 가족은 버지니아에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조지아란 주에서 GFM이라는 선교회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일하며, 복음을 전파하시다가 2014년 8월 초 즈음에 이사를 오셨는데 평소에 항상 외국인들과 지내다가 이제는 그 기회가 없으니까 많이 허전하다고 하셨다. 실제로 이분들은 5년 동안 거기서 지내면서 어린 아이들도 가르치셨는데 4명은 정말 친자식처럼 보살피셨다. 그들은 학교가 끝나면 항상 Jon과 Jenna의 집에 가서 놀다가 집에 가는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Wheeler 가족도 기도를 했다고 한다, 다른 외국 사람과 지내며 친해질 수 잇기를 바라며. 그 결실이 나인 것 같다. 학교 교장 선생님이 Jon에게 연락을 하셨다고 한다 기도한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교환학생이 오는데 호스트 해줄 사람이 없다며 맡아준다면 매우 고맙겠다고 하셨는데 이분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YES라고 하셨다. 너무나도 고마운 분들이시다.


2. 첫 만남

13시간의 비행과 번갈아타서 2시간의 비행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푹 잤다. 리치먼드 공항에 도착해서 이제 호스트를 맞이할 준비를 하려는데 몸이 심하게 떨렸다. 걸어가면서 정면에 아이 넷, 어른 두분이 큰 보드들을 들고 계셨다. 긴장이 많이 됬다. 호스트 아버지 Jon은 인상이 엄청나게 좋았다. 짧은 머리카락에 적당히 기른 수염 그리고 그 색깔은 정말 보기 좋았다. 호스트 엄마 또한 인상이 좋고 되게 착하셨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똑 닮았고 매우 정말 미국 아이들 모델처럼 생겼다. 호스트 가족은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게 그리고 편하게 대해 줬고 나 또한 정중하게 대했다. 첫 날은 의외로 빠르게 지나갔다. 저녁은 Chick Fil-A에서 먹었는데 버거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와플 프라이 또한 맘에 들었다. 밤에 짐을 풀고서 Jon 이랑 Jenna와 밤 늦게 까지 대화를 했다. 나는 이분들 인생을 대해 여쭈어 보았고, 이분들은 나의 인생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렇게 우리는 하룻밤 만에 엄청나게 친해질 수 있었다.








호스트 가족들과 함께


 
3. 시작된 나의 학교생활

내 방은 혼자 쓰기에는 매우 충분하고 짐도 풀고 깔끔하게 보일 정도로 좋았다.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하려고 7시 정도에 일어났는데 아줌마가 편히 쉬라고 월요일부터 가게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내가 방문이라도 하고 싶다고 해서 투어를 하러 갔다. 학교는 작았고 인상이 깊진 않았다. 10시 정도에 갔는데 쉬는 시간이었는지 학생들이 복도에 서있거나 다른 교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다들 멈춰서서 너무 반갑다고 인사도 하고 이것 저것 물어보았는데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대답도 잘해주지 못했다. 그나마 얼굴을 확인하고 이름도 밝히는 것 같았는데 얼굴도 잘 못 보았고 이름도 외우질 못해 미안했다. 무안하게 서있는데 민호 형을 보았다. 미국에 오기전에 내 담당선생님 안성례 선생님이 학교에 선배 한분이 계시다고 하셨는데 민호 형이었다. 형은 졸업을 하실 때까지 나에게 잘해주시고 도와주셨던 엄청나게 고마운 형이다. 민호 형을 보고나서 나는 후배가 온다면 민호 형이 해주셨던 것처럼 할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 투어는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쉬는시간이 5분이고 학교는 작았기에 볼 것은 다 보았다. 그 때가 금요일이었는데 나는 월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학교 가기 전에 찍은 사진

주말 동안 호스트 가족이랑 학교, 집 생활용품 쇼핑도 하고 낚시도 하고 집에서 영화랑 드라마를 보며 지냈다. 호스트에 대한 불만은 하나도 없었고 매우 좋았다. 그렇게 월요일이되고 나는 첫 등교를 하게 되었다. Homeroom시간에는 친구들이랑 담임선생님이랑 주말 동안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prayer request라고 기도 하고 싶은 것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학생 한명이 기도를 하는 시간이다. 솔직히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자괴감도 들었고 당황했다. 첫 수업은 성경이었는데 Andrew라고 키 크고 벌써부터 수염이 난 친구가 무엇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도와주었다. 수업엔 갔지만 노트 적기 빼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어야지 말이다. 두 번째는 수학 시간! 그나마 말 없이 뭔가를 할 줄 아는 시간이다. 선생님은 매우 친절 했고 친구들은 아직 어색했다. 왼쪽 구석에 테이블에 앉아서 수업 만 집중했다. 물론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대충 칠판에 적는 걸로 이해를 했다. 그렇게 첫 날을 보냈는데 점심시간에는 혼자 앉지는 않았지만 혼자 앉는 것이 나았을 정도로 얘기도 못하고 말도 나에게는 안걸었다. 그리고 수업은 어떻게 되가는지도 몰랐고 그저 집 가기만을 기다렸다. 한국이 그립지는 않았다. 그저 어떻게 적응을 해야 할지 고민만 했다.
 
나는 둘째 날도 똑같을 거라 생각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수업을 알아들은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친구는 사귀었다. 말도 못했는데 어떻게? 체육시간이다. 거의 30명 가까운 학생들, 6학년부터 10학년들이 나왔다. 우리는 킥볼을 했다. 킥볼은 한국에서 따지자면 발야구다. 공 찰 줄만 알면 평균은 가는 스포츠다. 나는 축구는 드리블은 꽝이고 차는 건 잘했다. 내 턴이 오자마자 나는 속으로 매우 좋아하며 정확하게 찼다. 우리 팀은 내가 못할 줄 알았던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애니까 뒤쪽에다 뒀는데 첫 구부터 홈런을 차니까 매우 당황한 것 같다. 표정들은 솔직히 볼만 했다. 홈 베이스를 밟고 들어왔는데 친구들이 환호한다. 이런 기분, 너무 좋았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었는데 나랑 같이 앉던 친구들이 칭찬도 해주고 뭔가를 계속 물어봤다. 간신히 알아들어가며 답도 해주고 정을 쌓아갔다.





4. 적응 완료했다!

한 달 뒤에, 나는 적응을 매우 잘해 이제는 학교에서 나를 모르는 애들은 없을 정도가 되었다. Mr. Gibson 역사, 체육 선생님은 나를 매우 좋아하셨다. 나도 이 선생님이 되게 좋았다. 장난끼도 많고 농담도 많고 진지할 땐 매우 진지하며 수업은 재밌었다. 그리고 깁슨 선생님은 나에게 별명도 지어주셨는데 이 별명은 내가 졸업 할 때까지 쓰였다. JJ. 제이제이. Junyeong Jeong의 약자를 따서 만드셨는데 이 이름은 미국에서도 자주 쓰이는 별명이다. 어쨌든 이제는 영어도 잘 들려서 수업도 잘 듣고 성적은 A랑 B, C를 골고루 받았는데 F는 전혀 없었다. 친구들이랑은 특히 남자애들이랑은 이미 절친이 되었고 여자애들이랑은 원만하게 어색함 없이 지냈다.




성적표

미국에서도 이벤트 중 하나로 장기자랑이 있다. 나는 민호형이랑 상준이랑 중국 친구인 Yi Yi와 함께 노래와 강남스타일을 하기로 했다. 플랜은 이랬다, 나랑 YiYi랑 처음에는 Lemon Tree라는 노래로 사람들이 우리는 노래만 하는 줄 알게 한다. 그러고 나서 노래가 2절에 가기 전에 끊고 강남 스타일로 바꾼다. 민호형이랑 상준이는 스테이지 밖에 있다가 올라와서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 이이랑 다 같이 서서 준비를 한다. 민호형은 랩을 하고 나랑 상준이랑 YiYi는 춤을 추는게 우리의 전략이었다. 민호형은 노래를 편곡 했고 나랑 YiYi는 노래 연습, 그리고 상준이는 춤 안무를 만들어 같이 연습했다. 그리고 당일날 우리는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였다. 잔잔했던 노래가 갑자기 강남 스타일로 바뀌니 사람들은 환호를 했고 우리가 랩과 춤을 추자 다같이 신나게 놀았다. 정말 즐겁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축구는 이 당시에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스포츠다. 학교에서 축구 팀 연습이 있다고 듣자마자 호스트 아빠에게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옷도 없으면서 바로 플레이를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한 포지션은 골키퍼다. 이미 우리 팀에는 185센티미터가 넘어가는 시니어 골키퍼가 있었기에 나는 수비도 하고 공격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관찰을 했는데 우리 팀 골키퍼는 솔직히 영 아니었다. 장신인데도 불구하고 골키퍼라면 당연히 해야 할 다이빙도 잘 못 뛰었고 공만 잘 잡았다. 마지막 즈음에 코치님 즉 우리 교장선생님이 나를 골키퍼로 보내셨다.

나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상관 쓰지 않고 몸을 막 날렸다. 어차피 옷은 빨면 되니까. 다이빙으로 쳐내고 볼을 몰고 가까이 온 공격수에게는 몸을 날리며 슬라이딩을 하면서 나를 어필했다. 마지막에는 땅볼로 오는 빠른 공을 바로 온몸을 땅에 붙이며 공을 잡았다. 그래서 나는 골키퍼가 되었는가? 답은 No다. 연습 하는 것만 봐도 알 것이다 축구를 아는 사람들은. 이 팀은 코치가 잘못되었다. 코치 즉 우리 교장선생님은 축구를 좋아하기만 하지 전술, 연습 방법을 가르치는 것 뿐만 아니라 본인 자체가 축구를 못했다. 드리블은 고사하고 차는 것 마저 발가락으로 차고 있으니 누가 축구를 배우겠는가.

그래도 우리학교에 축구에 재능있으신 분들이 여럿 있어서 안배우고도 잘 하긴 하는데 문제는 절대 뒤도 안 본다 절대로. 앞이 막히면 뒤로 볼을 돌려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무조건 직진 만 한다. 앞이 막혔다고? 알았어 바로 슈팅 찬다가 이분들 본능이다. 의외로 다른 팀들과는 막상 막하다. 그나마 다른 팀은 제대로 된 코치가 있어선지 전술은 괜찮게 했다. 그 쪽 선수들이 실력이 좋지 않았을 뿐. 나는 해딩도 잘하고 슈팅이 좋아서 공격수로 역할을 다했다. 유효슈팅도 많고 어시스트도 많았고 시즌 중 3번 골을 넣었다. 축구 덕분에 시니어 형들이랑 누나들이랑 많이 친해졌다. 이 형들은 장난끼가 많았는데 진짜 재밌었다.




농구 또한 좋아했는데 포인트만 찍자면 나는 이 당시에 농구는 완전 못했다. 축구는 주전이었지만 농구는 벤치 석이었다. 그래도 간간히 주전을 쉬게 하려고 교체를 해주셔서 경험은 쌓았다. 내가 8,9,10 학년 6~7명 중에 교체 선수로 두 번째로 많이 뛴 선수 일 것이다. 대부분의 주전은 축구 주전 뛰던 형들이었는데 특히 Christopher, 별명은 CW가 나를 많이 도와줬다. 칭찬도 많이 해줬고 다독여주고 특히 팀을 잘 이끌었다. CW는 지금도 내 농구 롤 모델이다.
 


 
5. 4년간의 유학생활

유학생활 2014년 8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나는 4년 동안 같은 호스트랑 지냈다. 나를, 내 가족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시고 나또한 그분들과 같은 대우를 했다. 허물없이 지냈다. (나이는 모두 만 입니다)29살 이셨던 아저씨 아줌마는 33살이 되었고 2살, 4살, 6살, 7살 이었던 Tyler, Jonathan, Mikayla, Nathan은 6살, 9살, 11살, 12살이 되었다. 나이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내가 처음 왔을 때 어떤 아이는 생일이 지나지 않았었고 졸업 할 때가 되니 한 살을 더 먹었기 때문이다. 막내 Tyler는 내가 왔을 때는 기저귀를 갈고 말도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말도 잘하고 책도 읽는다. 게다가 어린나이에 초등학교 1학년이다 지금은. 셋째는 귀염성이 많았는데 점점 애가 말도 잘 안하고 매를 잘 버는 장난꾸러기가 됐다. 둘 째는 장난끼가 많던 여자아이에 성깔도 있었는데 이제는 어린 숙녀가 됬다. 내년이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첫 째. 정이 제일 많이 든 아이다. 항상 친동생처럼 지냈고 아직도 처음만나서 내가 축구를 가르치던 때가 생각이 난다. Nathan은 나를 축구 선생님, 그리고 나를 축구 롤 모델로 생각한다고 Jon이 말해줬을 때가 기억이 난다. 나중에, 곧 머지 않아 Nathan은 우리학교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다. 이미 자기보다 높은 학년 선수들을 재치고 슛팅 감각 또한 좋기에 우리 학교 탑 스트라이커가 될 것이다. 처음 왔을때는 친절하고 조용하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양보는 서슴치 않았던 Nathan은 이제 나랑은 레슬링도 하고 축구 경기도 같이 뛰었으며 장난도 많이 치는 사이다. 아직도 덩치가 작지만 6학년이기에 더 자라면 강인하고 남을 위해 사는 아이가 될거 같다.




호스트가 조지아 살때 놀러 오던 친구

축구와 농구 부문에 있어서 나는 10,11학년과 12학년 때 날라다녔다. 10학년과 11학년때는 골키퍼로 활약을 해서 한게임에 36 세이브를 한 기록이 있고 다른 게임에서도 10~20번 이상의 세이브를 했다. 2015~2016, 2016~2017년도에 둘다 Defensive Player of the year상을 받았다. 그리고 11학년 때 골키퍼 뿐만 아니라 필드에서도 활약을 했다 그리고 12학년 때는 골키퍼는 하지 않고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로 활약을 해서 리그에서 All conforence 상을 받았다. 이 상은 리그에서 돋보였던 선수들에게 주는 상으로 팀 중에 많으면 세명 대게는 한 명 그리고 아예 안받는 팀도 있다. 11학년 때는 우리팀에서 혼자 이 상을 받았고 12학년 때는 나와 Andrew(처음 왔을 때 나를 도와준 친구)가 받았다. 농구에서는 10학년 Team Award상을 받았고 11학년 때는 Offensive player of the year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2학년 때 받을 상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받지 못했지만 농구에서 Senior night 때 나는 우리학교 최고 득점 선수로 발표되었다.


받은 상들


호스트 가족들과 풋볼게임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나에게 인생에서나 교육으로서나 좋은 가르침을 주셨고 친구들은 서로 졸업까지 버티며 즐겁게 지내며 서로를 응원해주고 미래를 바래준 멋진 동반자들이었다. 교장선생님 겸 성경 선생님은 나에게 중요한, 미래에도 쓰임있을, 그리고 인생과 성경을 가르쳐주셨다. 모두에게 너무나 감사한다. 모두의 도움이 있었기에 나는 매 해마다 발전이 있었다. 9학년 10학년 때 나는 GPA를 3.17과 3.33을 받았다. 매번 공부했다. 퀴즈나 시험은 반드시 모르는 것은 물어 보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중간 고사나 기말 고사때는 시험보기 전 주는 최종복습 그리고 시험 과목 3일 전에는 그 과목들을 하루에 각각 최소 3시간 씩은 공부를 했다.

하지만 점수는 나에게 보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짜증났다. 항상 노력하고 시험 기간, 그것도 시험 전 주는 하루에 2시간씩은 공부를 하고 시험 보기 3일 전부터는 시험 끝날때까지 하루에 7시간은 공부 했다. 그런데 결과는 항상 피폐했다.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가 노력을 안했겟지, 헛으로만 공부한거 아니야?” 하지만 본인은 안다 아니 본인 만큼은 절대로 안다. 자신이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우리 호스트 부모님도 나를 봤다 심지어 호스트 아이들도. 학교 갔다가 와서 바로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한다 시험날에는 12시에 끝난다 집에 오면 12시 30분 점심 먹고 1시에 시작 저녁 먹을 때까지 한다. 저녁을 6시에 먹는다. 7시까지 저녁 먹고 쉬고 10시나 11시까지만 한다. 다음날 볼 시험을 위해 그리고 다음날 공부를 할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몇 번은 충분하지가 않아서 작정하고 새벽 두시까지 한 적이 있다. 그 다음날에 볼 시험을 위해. 무서웠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할까봐. 그런데 참 역겨운 건 그 두시까지 공부했던 과목 화학이 너무나 어려웠기에 클래스 최고 점수가 C였다. 물론 대부분이 F를 맞아서 선생님은 우리의 점수를 올렸다. 얼마나 올려야 최저 점수 학생이 C-를 받았냐하면 그 최고 점수 친구가 120점대를 받았다. 참고로 우리학교 C-는 82점이다.

난 지금도 다른 학교 친구들이 화학이 제일 쉬웠다고 하면 화가 난다. 한 번은 우리 형이 집에 왔을 때 화학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엄청 날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기는 실기대로 A를 맞기 위해 노력했고 시험 또한 부족하지 않은 점수가 나올 수 있게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11학년 때 나는 내 노력의 결실을 보았다. GPA 4점 만점에 4.14를 받았다. 어떻게 만점이 4 점인데 4.14가 나올까 싶을 것이다. Honor 과목을 들었다. A가 4점이면 honor A는 5점이다. 그렇게 나는 아쉽게 1개의 B를 받고 두 과목은 Honor A 그리고 나머지 네 과목에서는 A를 받아냈다. 너무 기뻤다.

밝은미래교육 선생님께도 보여드렸고 부모님께도 보여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12학년. 아직 최종 점수는 받지 못했지만 최근 성적표에는 B하나 나머지는 다 A이고 1학기 때는 올 A를 받았다. Honor 영어를 듣기 때문에 원래는 4점 만점에 4.125를 받았어야 하지만 학교의 실수로 4점이 기록되어있다. 마지막 2학기 까지도 최선을 다해 좋은 점수를 받아낼 것이다. 앞에서 말한 듯이 나는 공부를 멀리 했었다. 정말 이기적이지 않은가? 나 자신이 편하고 즐거우려고 부모님은 걱정은 무시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유학을 오고나서 나는 바뀌었다. 그저 유학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유학에 와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이 있고 나를 위해 희생 하신 우리 부모님의 피 같은 노력이 있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최종적으로 Virginia Commonwealth University와 Iowa State University에 붙었다 개인적으로 아이오와 주립대를 가고 싶으나 개인 사정이 있기에 대학은 나중으로 밀어뒀다. 그러나 나는 안다. 대학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위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며 말하지 못할 것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한 것. 앞으로 있을 일이 매우 기대된다. 보호틀에 갇혀있던 곳에서 벗어나서 이제 사회에 일부가 되는 것. 앞으로는 더 힘들어 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다.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께서는 항상 함께 계시니까 두려워도 나는 이겨낼 수 있다.


2018 2학기 4쿼터 interim


VCU Acceptance


아이오와 주립대 acceptance


7. 감사의 인사

저를 미국에 와서 잘 생활하게 도와주시고 걱정해주셨던 밝은미래교육 선생님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를 담당해주셨던 안성례 선생님, 한천희 선생님, 김민희 선생님, 신동휘 선생님, 신은영 선생님 그리고 저를 가르쳐주신 David 선생님, 이명순 선생님 또 항상 제 힘이 되어주셨던 염성현 과장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표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추억의 워싱턴 여행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