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진로란 ‘부모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미국무부 교환학생 참가후기
[하태욱] 1탄 - 누나셋 막내아들,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되다

누나 셋에 금지옥엽 막내아들 태욱이이젠 부모님이 1도 걱정안하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

 

 

1. 교환학생에 가게 된 계기

어느날 방에서 공부하고있을때 아빠가 갑자기 내 방 문을열고 내방에 들어와서 물었다 태욱아 혹시 미국 가볼생각 있니?”. 나는 순간 혼란스러워서 대답하지 못했다. 아빠는 일 갔다 올테니 생각해보라 하시고 집에서 나가셨다. 나는 계속 공부를 했지만 아빠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공부하는것을 멈추고 생각에 빠졌다. “미국에 가면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 수업이 다 영어일텐데 못알아들으면 어떻하지?”, “ 내가 가족에게서 떨어져서 살 수 있을까?? 난 해외여행도 가본적 없는데?”. 순간 수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빠가 국방부에 다녀오시는 동안 ( 아빠의 직업은 군인이다)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했다. 제일 먼저 한것은 인터넷 검색이었다. 미국 교환학생의 장점,단점,불편한점,성공노하우까지 도움이될만한건 필살적으로 다 찾아서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이때까지 부모님 곁을 떠난적도 없고, 해외에 나간적도 없지만..... 그래서 이번기회에 해보고싶어!”. 이런 기회도 흔한 기회가 아닌데다가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건 내가 자신이 너무 겁쟁이 같았다. 결국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셨고 나는 대답했다 네 아빠”. 아빠는 알겠다며 본격적으로 교환학생에 대해 찾아보시고, 밝은미래교육에 날 데려가시는 등 많이 심혈을 기울이셨다.

그러나 나는 ELTiS영어시험을 2번이나 떨어졌었고, 밝은미래교육 이영길대표님은 아쉽게도 나를 두 번째나 돌려보내려던 차에, 우리 아빠가 뒤늦게 찾아와서 우리 아들 꼭 좀 보내주십시오. 패도 좋습니다. ” 라며 비장한 말씀하셨고, 이영길대표님은 놀란가슴으로 잠시 고민하다가 예 한번 해보겠습니다. 대신 저희 계획을 온전히 따라와주십시오.”라고 하셨다. 나는 많은 과목을 수강하던 학원을 다 끊고, 밝은미래교육에 다니면서 영어과외를 받았다. 그때 얻은 동기부여와 자신감은 정말 놀라웠다. 영어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영어뿐아니라 1,2달만에 전과목에서 A를 받고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 나의 사례로 인해 밝은미래교육에서는 나와 비슷한 사례의 학생들에게 특별과외로 기회를 주곤 하신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남은 중학교 성적관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다 어느새 시간은 금방 흘러갔고, 출국날자가 하루앞으로 다가왔다. 막상 하루앞으로 다가오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그냥 .. 이제 가는구나라고 온종일 넋이 나가있었던것같다.

 

 

2. 미국의 첫걸음

출국날 당일, 공항에서 나는 준비해온 공항지도를 한쪽손에 들고 남은 한쪽 손으로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내가 가야할곳을 꼼꼼히 살폈다. 우선 인천공항은 무척 찾아다니기 쉬웠다. 부모님도 옆에 계시고 모르는게 있으면 공항직원한테 바로바로 물어보면 되니까 생각보다 쉽게 출발했다. 물론, 출국하기전에 영어로 간단한 인터뷰를하는데 되게 간단한 질문이었다. 예를들어 어디주로 가냐는 등, 도시이름은 뭐냐는 등.. 처음 비행기를 타자마자 그대로 오랜시간을 날았다. 옆자리에 앉으신 한국인 할머니와 대화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시애틀까지 올 수 있었다. 시애틀에 도착하자 모든게 영어로 바뀌었다. 마음의 준비는 했었지만 막상 직접 와보니 기분이 묘했다.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낮선 장소, 처음보는 먹거리와 가게 이름들, 공항전체에 울리는 주의사항과 공지사항. 모든것이 한순간에 낮설어졌다. 마음을 다시 다잡고 주위를 둘러봤다. 다음 비행기까지 2시간 정도 남았을 때 나는 공항에있는 가게들을 둘러보고, 기다리는 좌석에 앉아서 한국에서 가져온 드라마 포토북을 보며 시간을 떼웠다. 1시간정도 남았을때 옆에 계시던 한 여성분이 말을 걸으셨다. “Are you from South Korea?”(한국에서 왔어?). 나는 당연히 “yes I am”(네 한국에서 왔어요) 이라고 대답했다. 여성분은 내 책을 보시더니 자기도 보고싶다고 하셨다. 나는 여성분께 책을 잠시 빌려드리고 가만히 않아있는데 갑자기 싱가포르에 가는 이유를 물어보셨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해서 “What are you talking about? I am going to USA”(무슨 말씀이세요? 저 미국으로 가는 중이에요.). 라고 답했고 여성분은 여기는 싱가포르로 가는 비행기라면서 당황해 하셨다. 나는 다시 비행기표를 꺼내 번호를 체크했고 내 비행기편 번호는 365가 아닌 356번 이였다. 나는 시간이 30분 남은걸 확인하고 여성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황급히 짐을 챙겨서 좌석을 옮겼다. 정말 아찔하고 스릴이 넘쳤다.ㅜㅜ 감사하게도 그 여성분 덕분에 다행이 올바른 비행기에 올랐다. 최종 목적지인 유진(Eugene)에 도착하자마 캐리어를 꺼냈는데 손잡이가 부서져 있었다. 뜨아..

 

겨우겨우 캐리어2개를 끌고 나오는데 호스트 가족으로 보이는 한 그룹이 내 이름을 크게 적고 흔들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각각의 특징을 가진 내 또래의 3명과 여자아이한명, 멕시코사람으로 보이는 한명, 그리고 호스트 부모님이 계셨다. 처음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인사를 마치고 호스트 아버지께서 캐리어가 왜 부서졌냐고 물어보셔서 손잡이가 오는길에 부서졌다고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바로 카운터로 가셔서 내 부서진 캐리어를 새 캐리어로 바꿔 달라고 직원에게 요청하셨다. 다행히 직원분께서 새 캐리어를 주셨고, 나는 짐을 새 캐리어에 옮긴 후 차에 싣고 나도 차에 올라탔다.

 

 

3. 대화와 적응의 시작

우리는 맥도날드에가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를 했다. 할아버지께서 치킨을 먹는 날 보고 왜 젓가락을 안 쓰냐고 물어보셨다. 물론 그때의 나는 영어를 엄청 못했었기 때문에 농담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따라서 웃기만 한게 기억난다. 왜냐면 나는 젓가락이 영어로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끝낸 후 집으로 가서 내 방을 소개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방이어서 놀랬다. 2층침대에 책상,옷장,옷걸이,서랍까지 부족한거 하나 없었다. 미국에오고 처음 약 일주일동안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전에 미국에 적응해야하기 때문이다. 처음 1-2일동안은 시차를 적응하느라 고생했었다(시차를 적응하지 못하면 점심시간에 잠들 수 도있다). 그다음은 집밖을 나가서 주위를 둘러보았고, 호스트 부모님과 학교에 미리가서 미리 학교건물 위치와 내 시간표를 파악한 뒤에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약 일주일동안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호스트 부모님의 손자와 친해지면서 미국생활에 적응해갔다. 내가 다니게된 학교는 학생 수가 무척 적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돼었다. 왜냐하면 학교전체 학생수가 150명이었기때문에 모두 다 알고지내는 사이이고 나만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이였기 때문이다. 학교에 교환학생이 한명 뿐이라서 애들이 어떤 반응일지도 궁금했고, 혹시 다른나라에서 온 외국인을 싫어할까 걱정도 많이했었다.

 


4. 생각한 것과 달랐던 미국학교 생활

막상 학교에 가고나보니 애들은 딱히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먼저 말을 걸어줬다. 미국 친구들하고 처음 대화할때는 엄청 긴장되고 혹시 문법을 틀리게 말했는지 머릿속으로 3번넘게 다시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고, 그때부터는 영어를 쓰는것에 거부감이나 부담감은 조금 없어졌었다. 특히 거의 대화가 필요없는 스포츠 시간이나 체육시간에는 많은 대화없이 그냥 같이 게임을 하면 되는 것 이었기 때문에 나한텐 그 시간이 거의 천국으로 느껴졌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동아리에 들어가기로 다짐했다. 이유는 세가지가 있었다.

첫째, 밝은미래교육에서 미국에 가기 전 동아리에 가는것을 추천해주었었다.

두번째, 미국에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에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살이 많이 찔 수도있다.

세번째, 동아리에서는 거의 100% 확률로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다. 동아리는 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팀원들간의 의사소통은 기본이고 따로 떨어지는 사람없이 균일하게 게임을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혼자 뒤쳐질수도 없는 시스템으로 되어져있다. 아무리 자기가 못하는 스포츠 종목을 선택했더라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같이 극복해 나갈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내가 처음으로 들어간 트랙(track)동아리의 경우에는 주로 투포환던지기, 철 원반 던지기, 달리기가 있었다. 그 외에도 멀리뛰기, 철봉 높이뛰기, 두발뛰기 등 엄청나게 많은종목이 결함되어 있는 동아리이다. 물론 그에 따라서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제일 좋은 장점은 동아리 내에서 종목이 너무 많기때문에 자기가 자신있는 종목만 선택해서 대회에 나갈수 있다. 트랙동아리의 좋은 점은 한 주(state)가 모여서 대회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오레곤에 있었기때문에 오레곤의 학교가 모여서 대회를 많이 진행하였다. 그 대회에서 나는 달리기, 투포환, 멀리뛰기, 창던지기를 나갔었다. 내가 제일 잘 하는 종목은 창던지기였기 때문에 대회에서 3등까지도 해보았다. 아쉽게도 따로 상장은 나오지 않는 대회였기 때문에 기록은 없지만 친구들이 인정해준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였었다. 나도 창 던지기에 내가 소질있는 것을 알고 친구들에게 따로 더 레슨을 듣고 하루에 창을 20번 넘게 던졌었다. 그렇게 트랙동아리에 있는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고 학교도 같이 다니고, 점심도 같이 매점가서 사먹고 수업도 처음이여서 많이 어려웠지만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해서 평균 B이상을 받으면서 나쁘지않게 10학년2학기를 마칠수 있었다. 사실 나는 10학년 2학기때 동아리 친구말고도 친구 1 명이 더 있었는데 이름은 씨실리아 이고 그냥 씨씨(CC)라고 불리는 친구하고 같이 다녔다. 처음에 친구가 없어서 혼자 다니고있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고, 과목도 거의 다 같았었기 때문에 엄청 친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10학년2학기가 끝나고 CC는 집안사정 때문에 다른학교로 전학을 가게되었고, 나는 혼자가 될 위기에 처해졌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항상 같이 다니던 베프가 사라지니까 다시 혼자다니게 될것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 친구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 친구들 하고는 과목이 거의 안맞는데다가 학년도 다르기때문에 같이 다닐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민끝에 나는 친구를 더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름방학을 하고 나는 걱정을 뒤로하고 진짜 마음껏 놀러다녔다. 사실 내가 심심하지 않도록 호스트 부모님께서 계속 어디론가 데려가 주셨다. 아케이드(오락실), 수영장, LA,.디즈니랜드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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